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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한성부 대화재(1426년)와 최초 소방서 탄생
THE DESIGN 조회수:46 222.100.21.229
2019-04-18 23:55:22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큰 화재가 세종 8년(1426년 2월 15일)에 수도인 한성부에서 발생하여 인명피해는 32명이나 사망하였고 다수 실종자가 발생했으며 재산피해는 2170채의 가옥이 전소하여 당시 전체 한양 가옥의 6분의 1 가량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친숙하고 존경받고 있는 조선왕조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은 화마가 휩쓴 한성부(지금의 서울)의 처참한 모습과 백성들의 고통에 절규했고 곧바로 화재를 막아낼 조직을 창설하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 소방관청인 ‘금화도감(禁火都監)’이다.

 

최초 소방 고유조직인 금화도감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금화(禁火)법령, 방화관계법령, 실화, 방화 형법 등이 기록되어 소방조직과 제도의 발달상을 알수 있으며, 주요 화재사건에 대한 기록과 금화령, 금화조건, 화재방비조건 등이 기록되어있다. 또한 최초의 소방관인 금화군(禁火軍)은 불을 끄는 군인과 물을 나르는 급수비자로 구성되었다.

 

세종대왕은 화재이후 강력한 방화대책은 추진하게 되는데 첫째, 초가집으로 다닥다닥 이어진 가옥과 행랑 사이에 방화장을 쌓아서 연소 확대 방지에 주력하고자 했으며 성내 도로를 넓게 사방으로 통하게 하여 금화군(소방대원)이 신속하게 활동하게 하였다.

 

둘째, 가옥 5개마다 우물을 하나씩 파고, 관청에는 우물을 두 개씩 파서 물을 저장하여 화재에 대비하여 평상시에 소방용수시설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셋째, 화재소식이 들리면 곧 각각 소속부하를 거느리고 가서 합동으로 끄도록 하였다.

 

조선시대 최초의 소방관인 금화군은 세조 13년(1467년)에 멸화군(滅火軍)으로 개칭하여 전문적인 소방조직으로 발전하는데 당시에 화재진압 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평상시에 2층 종루에서 화재를 감시하다가 화재가 의심되거나 발생하면 종을 쳐서 화재를 알리고, 즉각적으로 멸화군이 당시의 소방장비인 도끼, 동아줄, 쇠 갈고리, 멸화자 등을 가지고 출동하고 급수비자는 물통을 들고 출동한다.

 

화재현장에 도착하면 물을 적신 멸화자와 물통으로 화재를 진압하고 쇠 갈고리와 도끼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방지하고 종루 담당자는 불이 꺼질 때까지 계속해서 타종으로 진압상황을 알리고 불이 난 장소 높은 곳에 깃발을 세워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세종은 당시 한성부 대화재로 지도력에 큰 타격을 입었으나 폐허가 된 한양을 도로정비와 가옥구조 개선, 한성부의 초가지붕을 기와지붕으로 개량하고 금화도감을 신설하여 화재예방시스템을 구축하여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는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다.

 

아마도 세종은 화마와 싸워서 이기는 방법은 화재예방과 안전교육이 중요함을 인지하고 소방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조선시대 밀집된 초가집과 불을 사용하는 아궁이는 백성들이 부주의하면 언제든지 큰 화재가 발생할 수 있기에 백성들에게 화재예방 경각심을 강조하여 안전한 분위기를 조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한성부 대화재의 교훈처럼 소방의 역사는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가슴 아픈 대형재난 참사이후에 개선되고 반복되듯이 우리가 화마로부터 극복하는 방법은 일상에서 사소하고 작은 위험요소에도 관심을 가지고 안전의식을 생활화하여 자발적으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천부평소방서 소방홍보팀장 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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