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저녁의 말
정수자
자분자분 새김질로 저녁이 또 길어진다
과부하가 걸린 듯이 지레 붉은 단풍 사이
밀쳐 둔 신간들 앞에 생이 자꾸 더부룩하다
새김질은 어쩌면 슬픔을 수선하는 일
뭉텅 삼켰거나 훌쩍 들이켰거나
파지 속 붉은 신음을 씹다 젓다 별도 찾듯
신트림들 되새기며 점점 길게 저물려니
매일 홀로 넘어도 석양 저리 장엄하듯
시라는 지극한 울음을 비장처럼 길렀으니
정수자
1984년 세종숭모제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등단.
시집 『그을린 입술』 등 6권과 『한국 현대 시인론』 등 공저 10여 권.
중앙시조대상, 이영도시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한국시조대상 등 수상.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