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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공호는 일제의 침탈과 강제 노역의 증거

인천시립박물관, 지역 내 방공호 기초 조사 진행

작성일 : 2019-08-14 02:21 수정일 : 2019-08-14 02:24

인천광역시 시립박물관은 지난 5일, 7일 두 차례에 걸쳐 중구 송학동 자유공원(응봉산)과 신흥동 일대 산재한 것으로 알려진 일제강점기 방공호 현장을 탐문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시립박물관이 지속적으로 진행 중인 근·현대 문화유산에 대한 조사의 일환으로, 인천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방공호 시설 현황 파악을 위한 기초 조사다. 인천 지역에는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방공호의 수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실체와 위치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정식으로 조사된 적이 없다. 간간이 주민들의 입으로 소재 파악 등이 전해져 왔으며 관리 주체도 불분명한 상태다.

 

최근 시립박물관은 중구 송학동 자유공원(응봉산) 공영주차장, 자유공원 석정루 절벽 아래, 송학동 인천광역시역사자료관 내, 신흥동 긴담모퉁이길 등 10여개소의 방공호 위치를 확인했다. 이중 우선 내부 진입이 가능한 자유공원 공영주차장과 석정루 절벽 아래 그리고 인천광역시역사자료관 관내 등 방공호 3개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뒤편 공영주차장 내 방공호의 규모는 높이와 폭이 각각 약 2m이고 현재 도달할 수 있는 길이는 10m로, 그 이상의 내부는 시멘트로 막아 놓아 진입할 수 없었다. 현재는 공원 관리를 위한 장비 창고로 활용하고 있다.

 

석정루 아래쪽 절벽에 위치한 방공호는 초입 부분은 시멘트로 천정과 벽체를 마감한 상태로 높이 약 1.5m, 폭이 약 1.2m다. 절벽 안쪽으로 방공호가 이어지나 정확한 규모는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 이곳에 자리한 카페의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중구청 뒤쪽에 위치한 인천광역시역사자료관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사업가 코노 다케노스케(河野竹之助)의 저택으로 알려져 있다. 경내에는 2개의 방공호가 있었으나 이중 1곳은 입구가 폐쇄된 상태다. 정문에서 정원 돌계단을 올라가는 길에 있는 축대 아래에 ㄷ자 형태의 작은 석실형 방공호가 남아있다.

 

1908년 신흥동과 경동 싸리재를 연결하는 신작로를 내면서 쌓은 석축은 일명 ‘긴담모퉁이길’로 불린다. 주변에는 옛 인천부윤관사를 비롯해 일본인 관료들과 사업가들의 주택이 몰려있었다. 긴담모퉁이길 석축 아래에 방공호가 있는데 이는 그들을 위한 방공호로 추정된다. 방공호 입구는 아치형으로 입구 주위는 콘크리트로 보강되어 있으며 현재 철문으로 닫혀 있다.
  

이 방공호는 언덕 너머 1884년 개교한 일본인 학교인 아사히 소학교(현 신흥초등학교)와 길게 연결되었다는 소문이 있다. 신흥초등학교 쪽의 방공호 입구의 존재는 현재 아파트 건립과 우거진 잡풀 등으로 확인할 수 없다. 학교 관계자는 “오래전 본관 신축 건설 때 교무실 아래로 방공호가 연결돼 있는 통로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제국주의시대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고 영구 점령하기 위해 한반도 각지에 수많은 군사시설을 건설하였다. 1930년대 일제는「방공법」(1937.4.1.제정)에 따라 공습대피시설을 건설할 것을 법제화하고 도심지, 군사기지 주변에 갱도를 뚫어 방공호로 활용했다. 1940년대 태평양전쟁 말기 연합군과의 결전을 준비하며 수많은 갱도를 뚫어 최후 방어 진지로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인천 곳곳에서 발견되는 방공호 시설 역시 이 당시에 건설된 것으로, 당시 많은 조선인을 강제 동원해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방공호는 제국주의시대 일본의 침탈과 강제 노역의 증거이다. 현재 인천 지역 내 방공호 중 일반 주택 내에 있는 방공호는 도심지 재개발로 현황 파악 등 조사되지 않은 채 입구의 함몰 또는 통째로 매몰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방공호는 침략, 학살, 수탈 등 어두운 역사를 보여주는 ‘네거티브 문화재’이다. 징용 산업시설, 적산 주택 등에 대한 관심은 높은데 반해 방공호에 대한 발굴 조사는 전무하다시피하다.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은 “흔적들을 지워버리면 증거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방공호는 아픔을 기억하고 후세에 교훈적 가치를 전해야 하는 ‘기억유산’으로서, 네거티브 문화재를 지역 유산으로 보호하고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오준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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